備忘log

누가 나에게 직업을 묻는다면 대답하기가 참 애매하다.

왜냐....

나는 법적으로 백수이기 때문이다.

소위 말하는 프리랜서다.

유닉스 장비(특히 Sun 장비)들을 엔지니어링 하고

그와 관련된 강의도 가끔씩 한다.

때는 바야흐로 1992년... 내가 중학교 2학년 때,

당시에는 지금처럼 인터넷이 아닌 PC 통신을 하고 있었고

서비스의 객체가 되기 보다는 주체가 되기를 좋아하는 나는 직접 사설 BBS를 운영해 보려 맘 먹었다.

지금도 그 이름이 아련한, 밀키웨이, 호롱불 등등의 단일노드 사설 비비 프로그램들을

이것 저것 다운 받아서 사용해 보고 나도 직접 Turbo-C 2.0 을 이용해 제작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중3으로 올라가는 겨울방학 무렵, 요즘 중학생들은 고등학교 선수학습이다 머다 해서

정신없이 살지만, 그래도 내가 중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그것이 좀 덜했다.

그 당시에 나는 Unix의 아류인 MS에서 만든 XENIX 를 기반으로 하여 멀티 노드로 운영하는

사설 BBS 운영 사무실을 방문할 기회를 갖게 되었고 이때, 처음으로 유닉스의 개념을 접했다.

그리고 고등학교에 진학 후, Slackware 리눅스가 Hitel 등의 자료실을 통해 국내에 배포되던 때에,

잠시 사용해봤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97년에 대학에 입학해서, 제일 먼저 파악해 둔 것이 학과 건물이나 도서관이 아닌, 전자계산소의 위치였다.

당시에는 인터넷 즉, World Wide Web 의 개념이 사람들에게 점차 알려질 시점이었다.

지금처럼 가정에 초고속인터넷회선이 보급되기 전이라 다이얼 업 모뎀을 이용한 PPP 서비스로 인터넷을

하곤 했다. 하지만 학교(내가 다닌 대학교는 그 당시나 지금이나 인터넷 망 규모가 엄청 크다)에서는

전용선을 이용한 빠른 웹 서핑이 가능했기 때문에 공강시간에는 항상 전산실에 있었다.

그 때 눈에 들어왔던 것이, Digital 의 워크스테이션이었다.

PC에는 사용하려는 사람들이 항상 줄을 서서 대기하고 있었는데 비해 워크스테이션들은

사용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끌리는 점은 모니터가 20인치 였다는 것이다. ㅡ.ㅡ;

당시에는 14인치에서 15인치 CRT 화면이 대세였던지라 20인치 화면은 운동장 처럼 넓어 보였다.

그 녀석을 사용해 봐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자리에 앉았지만, 왠걸

Login
Password 라고 빈칸만 떠 있었다.

물어물어 계정발급실에 가서 계정을 받아서 다시 접속을 시도해 보았다.

별 멋없는 윈도 화면에 창이 두개가 뜨고(터미널 1개와 콘솔 1개)

터미널 창에는 hanterm 이라는 제목과 함께 % 프롬프트가 날 반겨주고 있었다.

갑자기 아련한 옛 추억들이 밀려 오면서 MS-DOS에 익숙해 져 있던 나는

당시부터 사용하기 시작했던 Windows95 에 적응을 못하고 있었던지라

도서관으로 달려갔다. (이때가 내가 입학하고서 처음 도서관에 간 게 아닌가 싶다 ㅡ.ㅡ;)

거기서 유닉스 기초 책과, 리눅스 관련 책 그리고 그 책에 부록으로 딸려 있는 알짜 레드햇 4.2.5 CD를 대출하였다.

도서관에서 조금 보다가 집에 가자 마자 바로 윈도를 없애버리고 리눅스를 설치를 하였다.

예전에 슬랙웨어와는 달리 설치 과정은 쉬웠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유닉스에 집착하였던 것 같다.

리눅스를 만지면서 원래 유닉스보다 편해 졌다는 느낌은 받았지만 그래도 어딘가 모르게

조잡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우연한 기회에 학교 전산소에서 시스템 관리자 알바를 하게 됐는데

이 때, SunOS 를 집중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군에서도 유닉스 서버를 계속 만질 기회가 있었으며 제대후에는 본격적으로

Sun 의 운영체제인 솔라리스를 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디지털을 인수한 컴팩이

발표한 Tru64 라는 운영체제와 IBM의 AIX도 만져보기 시작했지만....

그래도 첫정이 무서운지라 솔라리스가 가장 정감이 갔다.

요즘 나는, 프리랜서로 여러 업체 및 기관의 서버를 관리를 해 주고 있다.

그리고 최근에 발표된 Solaris10을 시험삼아 써 보고 2.6 이나 8 버전에 비해

많은 변화가 있었음을 알게 되었고 상당히 편해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내가 만지고 있는 서버들 대부분의 운영체제를 솔라리스10으로 바꿔 버렸다 ㅡ.ㅡ;

각각의 서버들을 완벽하게 마이그레이션 하고 났을 때,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서버들을 보면서

아련한 옛 추억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오랜만에 보는, 멋스럽지 않지만 그래도 (겉으로 보기에) 단순하고 깔끔한 맛이 있는 CDE 화면도

반가웠고, 각종 설정 파일들의 위치들을 다시금 확인하면서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짓고 있는 나를 발견하였다.

그리고 요즘 AMD Opteron CPU를 장착해서 나오는 SUN의 Fire X 시리즈들은 ILOM 이라고 해서

서버 내부의 각 센서 및 파트 모니터링 및 전원관리, 그리고 원격에서 콘솔화면 및 키보드, 마우스,

FDD, ODD 등을 가상으로 마운트 할 수 있는 기능까지 제공해 주기 때문에

서버에 전원 케이블과 랜 케이블만 연결해 놓는다면, System BIOS 설정부터 OS 설치까지 모두

네트워크를 통해 원격에서 다 처리할 수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위의 스크린샷이 그 예이다.

이 블로그의 본래 목적은 내가 취미로 하는 비행에 대한 포스팅이 주가 될 생각으로 만든거지만,

앞으로는 내가 솔라리스와 함께 하며 겪에 될 이런 저런 일들도 포함될 예정이다.

(어디까지나 예정일 뿐이다 ㅡ.ㅡ;)
2006/12/06 01:17 2006/12/06 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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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M/D R
    간만에 보는 CDE 화면이 저도 반갑네요 ^^ 뭔가 단단하고 뽀대나는(?!) 모습 ㅋ
    • M/D
      처음 X 윈도를 접한것은 OSF/Motif 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 외에도 리눅스를 통해 알게된 Afterstep 과
      SunOS 5.6 에 있었던 오픈룩도 있었구요...
      Motif와 경쟁하려고 Sun과 AT&T사 공동 개발한 걸로 기억하는데요.
      이 녀석도 요즘 볼 수 없어서 참 그립네요 ^^
  2. M/D R
    포스팅의 내용이 너무 으릅다. 결론은 블로그질 할라칸다 .. 이 말 아이가?
    머 .. 쪼매이 간단해도 잘 알아들을 수 있을거 같은데 ㅎㅎㅎ
    간만에 청소
    • M/D
      벨시릅게 어려븐것도 없는데요 ㅡ.ㅡ;
      머.. 블로그질 할끼다 라고는 이바구 안했어요 ㅋㅋ
      그래도 새 써버에 새 OS에 태터 업데이트하고
      스킨까지 바꿔 놓으니까
      뭔가 뿌듯합니다요 ^^
  3. M/D R
    솔라리스 검색하다 들렸습니다.^^ 옛 추억에 잠시나마 잠길수 있는 포스팅입니다.
    제가 처음 썬스팍을 접한게 94년도였습니다. 그당시 호롱불로 개인 호스팅을 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선배가 지역정봐시스템(014XY) 지역정보를 개발하게 되서 그곳에 가서 살았었죠. %% 엄청큰 모니터와 부드러운 키보드 참.. 좋구나~ 하고 무작정 빠져 슬렉웨어 한글화 작업까지 하게 됐으니.. 그 느낌의 여윤이 꾀 오래 간것 같습니다.

    오래전 일이지만~ 좋은기억들 되살릴수 있었네요. 고맙습니다. ^^
  4. M/D R
    화웨이 CFO 멩 완 저우 (Meng Wanzhou)가 은행 사기 혐의로 미국에 인도와 싸우고있는 브리티시 컬럼비아 대법원에서 청문회를 마친 후 화요일에 발표 된 문서에 은행이 선정됐다.



    두 사람은 멩과 다른 사람들이 미국의 제재에도 불구하고이란에서의 사업 거래에 대해 오해했을 때 화웨이와 은행 관계를 맺은 적어도 4 개의 금융 기관 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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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SBC Holdings Plc ( HSBA.L ) 및 Standard Chartered ( STAN.L ) 라는 두 가지 다른 사례는 이전에보고 된 바 있습니다.



    이 은행들은 은행이 은행 및 전신 사기,이란에 대한 제재를 위반하고 정의를 방해하는 등 멩과 화웨이를 상대로 제기 한 13 번의 기소에서“피해자”기관으로 간주됩니다.



    그녀와 화웨이는 모두 잘못을 부인했다.



    4 개 은행의 대표는 로이터의 의견을 구하는 이메일에 즉시 응답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표준 헌장, Citigroup 및 BNP Paribas는 이전에 로이터가 화웨이 사건에 관여 할 가능성에 대해 물었을 때 논평을 거부했습니다.



    법원은 멩 체포 비디오를 포함한 자료가 밴쿠버에서 9 월 23 일에 시작될 청문에 앞서 공개 될 수 있도록 허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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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웨이의 억만 장자 창업자 인 렌 fei 페이 (Ren Zhengfei)의 딸인 멩 (Meng)은 12 월 밴쿠버 공항에서 미국 영장으로 체포됐으며 그녀의 변호사들은 불법 체포됐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캐나다 당국이 국경 순찰대가“비밀 범죄 조사”의 일환으로 미국에 대한 증거를 수집 할 수 있도록 체포를 지연 시켰다고 주장했다.



    비디오에서 멩은 밴쿠버 공항 세관 및 출입국 관리 구역을 통과하고 국경 요원들이 호송하고 질문을 받고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Meng은 성적표에서 구금 된 이유를 반복해서 묻고 변호사는 연락 할 수 있지만 가족은 할 수 없다고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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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족이 나를 찾지 못하면 걱정할 것"이라고 그녀는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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